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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I 월요강좌

KMI 월요강좌가 4월부터는 매주 월요일 역삼역 BYSOL교육센터에서

개최됩니다. 기업과 관련된CEO의 가장 큰 관심사를 주제로 매주 월요일 2개 강좌씩 전문가 여러분을 모시고 함께 토론하는 모임입니다. 신지식경영인 및 라운드테이블 회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KMI

1. 일시: 2006년4/3(월) 18:30 ~21:10

2. 장소: 예지빌딩 BYSOL 세미나룸(역삼역6번출구 100M)

(Tel: 02-3106-4700)

18:30-19:30 제1주제: 기업가치와 전략경영

-최근의 KT&G, 일성신약, 대한방직 등 외국인, 소액주주 등의 연대움직임과 시사점을 중심으로

강사: 김용범대표(UTIC)

강사약력: 연세대 상경대학 경영학과, 동 경영대학원 졸

Stanford대 경영대학원 SEIT과정 4기 수료 전,

Andersen Consulting, 장은증권 기업금융부,

장기신용은행 자금운용부 근무

현, UTIC Holdings 대표이사 2004. 대한민국 기술대전

산업기술진흥유공자 정부포상 국무총리 표창 수상

19:30-20:00 만찬(두부촌)

20:00-21:00 제2주제: 통하는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전략

-진대제는 어떻게 건희노무현을 사로잡았는가? /말의 핵심에 집중하라/

논리와 감성/재미와 흥미/내용과 표현/실언 등

강사:강미은교수(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강사약력: 연세대 영문학과, 오하이오주립대 저널리즘 석사미시간대커뮤니뮤니케이션 박사,

SBS, EBS, KBS TV진행,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컬럼니스트 .객원논설위원

*주요저서: 글쓰기의 기술(원앤원북스), 매력적인 말하기(원앤원북스),통하고 싶은가?(매일경제)

*참가안내: 3/31(금)까지 참가여부를 연락바랍니다.신지식경영인은 무료참가(단 사전신청자 한함)

참가대상: 신지식경영인/KMI 라운드테이블멤버

연락처: Tel: 02-566-8564 E-mail: mo51@paran.com

Posted by 강남포럼 mo51
“진주가 온 뒤로 마을에 생기가 돌아”
부녀회장 된 베트남 신부 오진주씨
싹싹하고 농사일·한국음식 잘해... 어른들 모두 `우리 며느리`라 불러

열아홉 살 비취가 100명의 신부 후보에 섞여 집에서 100㎞나 떨어진 호찌민(옛 사이공) 시내로 나가던 날 아침, 어머니 티 로(49)는 눈물을 쏟았다. “엄마, 왜 울고 그래. 내가 안 뽑힐지도 모르는데. 그냥 바람 쐬러 갔다 오는 거예요.” 어머니 티 로는 심장이 나빴다. 심장이식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수술비를 마련할 길이 없었다. 비취의 할아버지는 큰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도박으로 다 탕진했다. 할아버지는 한때 4명의 아내와 함께 살았다. 아버지 치 용(52)은 할아버지를 경멸했지만 바람둥이 기질은 그대로 물려받았다. 대놓고 바람을 피웠고 술에 취해 들어온 날이면 어머니를 때렸다. 열다섯 살 되던 해에 비취는 초등학교를 중퇴했다. 아버지의 노름빚으로 땅도 소도 다 팔고 어머니마저 드러눕자 3녀 1남 중 맏딸인 비취가 사탕수수 농장에 나가야 했다.

최종 맞선자리. 비취는 한국에서 온 서른아홉 살의 김정기씨와 마주앉았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김씨는 스물다섯 살 되던 해에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와 한쪽 눈을 다쳤다. 숱하게 선을 봤으나 번번이 퇴짜였다. 실의의 나날을 보내던 그는 부모에게 등 떠밀려 신부를 구하기 위해 베트남까지 왔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남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부부가 될 것이었지만, 미래에 대한 두려움만 가득했다.

2년 4개월이 지났다. 지난 2월 14일 충북 옥천군 청성면 삼남리 마을회관은 새로운 부녀회장의 탄생을 축하하는 웃음으로 환했다. 이 날의 주인공은 2003년 10월에 이곳으로 시집온 응우이엔 테이 럽 벗 비취. 한국 이름은 오진주. 어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국제결혼을 결심한 베트남 시골의 소녀 가장은 이제 한국 최초의 외국인 부녀회장이 됐다. 한국어도 꽤 유창하게 구사한다.

“진주가 온 뒤로 늙은이밖에 없던 마을에 생기가 돈다”고 삼남리의 박재수(66) 이장은 말했다. “어찌나 싹싹한지 마을 어른이 모두 ‘우리 며느리’라 부르며 아낍니다.” 영화배우 문근영이 ‘국민 여동생’이라면 오진주씨는 ‘삼남리의 국민 며느리’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40여명의 주민이 사는 이 마을에 젊은 새댁이라곤 진주씨 한 명뿐이다. “농사일도 잘하고 한국음식도 잘 만들고, 마을 일에도 적극적이라 만장일치로 부녀회장을 뽑았다”고 박 이장은 말했다. 그녀의 시부모는 3년 전까지만 해도 동정을 받았지만 지금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자식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고 없는 이 마을에서 며느리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는 유일한 노부부이기 때문이다.

▲ "우리 부녀회장님, 너무 예뻐요" 마을회관에서 부녀회 회원들과 함께.
오진주씨는 김치와 된장찌개, 청국장을 직접 만들고, 명절에는 면민회관에서 배운 대로 차례상을 재현해 깜짝 놀라게 했다. 그녀의 수첩에는 음식의 재료와 제조법이 베트남어로 빽빽이 메모돼 있다. 농사일에는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했다. 고추를 따도 인삼을 심어도 한국의 토종 농사꾼보다 나았다. 대개 외국인 신부가 한국의 농촌 일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진주씨는 예외였다. “한국 농사가 베트남보다 편해요. 베트남은 일년 내내 농사 짓는데 한국은 봄·여름만 하잖아요.”

시아버지의 생일에는 풍선과 색종이로 장식을 만들고 서툰 글씨로 ‘아버지 생일 축하합니다’라고 써서 마을 전체를 감동시키기도 했다. 시부모도 며느리에게 선물을 했다. 작년 설에 남편과 함께 보름 동안의 친정나들이를 허락했고(베트남은 한국과 똑같이 음력 설을 쇤다) 사돈댁으로 1000만원을 부쳤다. 베트남 물가로는 1억5000만원쯤 되는 돈이다.

그러나 결혼생활이 처음부터 순탄치는 않았다. 결혼 초기엔 부부싸움이 잦았다. 어린 신부는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또 바람둥이 아버지에 대한 반감 탓에 의부증(疑夫症)이 있었다. 남편이 친구의 아내나 심지어 형수와 얘기만 해도 잡아 끌거나 화를 냈다. 남편 김정기씨는 ‘우리 말을 모르니까 오해가 생긴다’고 생각했다. “집안에만 있어선 우리 말을 빨리 배울 수 없어”라며 신랑은 무릎 위에 신부를 앉힌 채 트랙터를 몰고 돌아다녔다. 청성면 새마을지도자협의회에도 아내를 대동하며 인사를 시켰다. 명랑하고 사교적인 진주씨는 금세 사람들과 친해졌고 말도 빠르게 늘었다. 그녀는 쾌활함을 되찾았다. “남편도 나 창피해하지 않고 나도 창피하지 않아요. 나이 많아도 나 사랑해주고 예뻐해 주면 돼요.” 신랑의 선배가 신부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비취가 한국에선 보석의 이름이니까, 진주가 어때?” “오! 진주! 좋군.” 그렇게 해서 진주가 이름이, 감탄사가 성이 되었다.

▲ 오진주, 김정기씨 부부.
부부는 둘 다 성격이 급해서 자주 토닥거린다고 하는데 냉전을 못 참는 쪽은 거의 진주씨다. “5분만 말 않고 있으면 쿡 찔러요. 오빠, 왜 말 안 해! 그럼 끝이죠.” 신랑이 음흉한 목소리로 “여보라고 불러야 한다”고 해도 “애기 낳으면 여보, 그 전엔 오빠”란다. 오진주씨 나름의 우리 호칭 해석이다. 부부는 아직 아이가 없다. “부모님은 재촉하지만 아내가 한국 생활에 적응할 때까지 임신을 미뤘어요. 이젠 더 미룰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김정기씨의 말이다.

올 봄은 오진주씨에게 특별하게 다가올 것 같다. 시어머니 전분혹(66)씨가 곳간 열쇠를 넘겨주기로 했다. 명실상부한 집안의 며느리로 경제권을 이양 받는 것이다. 그리고 3월이면 그토록 기다리던 주민등록증이 나온다. 이젠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으로 베트남의 여동생들을 초청할 수 있다. 시아버지 김성환(68)씨는 “아들 없인 살아도 이제 며느리 없인 못 살겠다”고 말한다. “하는 짓마다 귀여워서 웃음꽃이 피고, 얘 오고 나선 골 낼 일이 없어요. 하루는 부침개에 빨간 고추, 파란 고추로 수를 놓고 있기에 들여다보니 희망, 행복, 그런 글자를 만들고 있더군요. 정말 엉뚱하지 않습니까?”

희망과 행복. 오진주씨는 베트남에서도 그 글자들을 자주 썼을까. 행복은 그녀가 한국에 와서 받은 선물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헌신의 길을 선택한 한 소녀가 남루한 한국의 농민 가족에게 가져온 선물일 것이다.

옥천= 허만갑 주간조선 기자 mghuh@chosun.com
입력 : 2006.02.26 11:37 12'
Posted by 강남포럼 mo51

'시스템운영의 鬼才' 박정희식 일하기
朴正熙 대통령이 사업을 추진할 때는 4단계를 밟았다. ①원리의 도출 ②원칙의 수립 ③시행계획 작성 ④집행 단계이다.
趙甲濟
吳源哲(전 대통령 경제제2수석비서관. 중화학기획단장)


브리핑이 成敗 결정

朴正熙 대통령이 사업을 추진할 때는 정해진 단계가 있다. ①원리의 도출 ②원칙의 수립 ③시행계획 작성 ④집행 단계이다.
朴正熙 대통령 때는 「브리핑 행정시대」 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그 중요성이 컸다. 브리핑 제도를 이해 못하고는, 朴대통령 시대의 행정을 이해할 수가 없다. 브리핑을 할 때는 그 목적과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내용이 있게 마련인데, 이것이 브리핑의 골자를 이룬다.

○ 「출발점」부터 「결론」까지 모두 포함되어야 하는데, 그 줄거리는 一路 매진하는 식으로 나가야지, 흔들려서는 안 된다.
○ 구분을 해 주어야 이해하기 쉽다. 구분에는 큰 구분과 작은 구분이 있다. 그리고 메시지 전달을 돕기 위해 도표를 많이 사용한다.
○ 브리핑 설명은 순식간에 납득이 가능하도록 간단명료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이해하기 쉬운 말을 써야 하고, 거부감이나 혼선이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난해한 이론은 금물이다.
○ 강조해야 할 사항은, 되풀이 설명한다. 되풀이 설명하면 여러 사람이 머리에 남게 된다. 학술논문 발표와는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다.
○ 결론은 명확해야 한다. 이론 정연하고 실시 가능한 방안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만 청취자 전부가 동감을 하게 되고, 대통령은 결단을 내릴 수 있다.

① 원리(原理)의 도출

원리라는 것은 발견되는 것이지 생각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민생고 해결과 경제자립」은 우리나라 1960년대 초기의 「경제개발 원리」였다. 朴대통령은 이 원리를 달성하기 위해, 「경제개발 5개년계획」 이라는 정책을 수립해서 추진했으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수출제일주의 정책」으로 전환을 했다.
수출을 하다 보니 「수출이야말로 국가 기본전략」 이라는 점을 발견하게 된 朴대통령은, 「수출제일주의」를 우리나라의 국시(國是) 즉, 「경제발전 원리」로 승격시켰다. 「국민생활향상」 「고용증대」 「수출제일주의」 「공업입국」 「전산업의 수출화」 「국민의 과학화」 「남북한 경쟁에서의 승리」 「고도산업국가 건설과 선진국 진입」 등이 「경제원리」에 속하는 사항이다. 국가원수인 朴대통령이 직접 담당해야 할 과제인데, 청와대 비서진이 보좌하게 된다. 朴대통령은 임기 18년 동안, 도출된 원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그래서 국민도 믿고 따라간 것이다. 원리가 통하는 시대였다는 뜻이다.
원리(原理)나 국시(國是)라는 것은 잘못 사용하다 보면, 정치 구호화(口號化)되기 쉽다. 어떤 정치가가 「우리나라가 잘 살기 위해서는 수출을 해야 한다」고 떠들어 보았자, 이것은 정치구호의 역할밖에 못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피하려면 비전 형태로 제시해야 하는데, 비전이 좋으냐, 나쁘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그래서 비전을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원수의 중요한 책임사항이 되는 것이다. 朴대통령은 수치화(數値化)하는 방식을 썼다. 수치로 표시하면, 국민들은 알아듣기 쉽다. 목표가 달성되었을 때의 수준을, 현재와 비교할 수 있고, 진행 과정도 수량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朴대통령은 「수출 제1주의시대(1964~1970년)」에는 10억 달러의 수출목표를 제시하면서, 연간 40%의 수출증가율을 요구했다. 이 목표가 달성되면 보리밥을 먹을지언정 국민의 생활고(生活苦)는 해결된다고 했다. 경제자립의 기초가 마련된다고 했다. 「全산업의 수출화시대(1973~1980)」에는 100억 달러의 수출목표와, 년간 40%의 수출증가율을 지시했다. 이 목표달성으로 국민 1인당 GNP는 1,000달러가 돼서 국민의 의식주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고, 우리나라는 중화학공업국가가 된다고 했다. 북한과의 경제전에서는 완승(完勝)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하면 된다. 우리도 할 수 있다」며 정부를 독려하고, 국민을 격려했다. 이것이 朴대통령의 국가경제건설 전략이었다. 그 결과 연간수출증가율은 1964~1970에는 41.9%, 1971~1979에는 39.8%를 달성했다. 16년간 평균 40%의 성장이라면, 기적과도 같은 성과이다. 朴대통령의 성품 즉, 신념, 집념 그리고 고집을 잘 나타내는 결과이다. 수출이 증대하다 보니, 그 효과는 全산업에 파급되고 고용도 급격히 늘어났다. 국민의 생계도 좋아졌다. 우리나라의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또한 정신면에서는 「하면 된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을 심어주기 위한, 산 교육장 역할도 했는데, 이 정신은 지금까지도 살아 남아서, 한국인의 정신적 지주(支柱)가 되고 있다.

② 다음 단계는 원칙의 작성이다.

행정면에서는 정책수립단계라고 할 수 있다. 각 담당부처에서 작성되는데 국가원수인 朴대통령의 재가를 얻어야 확정된다. 이때, ‘브리핑’하는 방식이 활용됐다.
이 자리에는 국무총리 이하 각부장관, 관계기관장 등이 배석하는데, ‘브리핑’은 해당과제에 대해서, 가장 지식이 많은 공무원이 담당한다. 보통은 국장급이 했지만, 과장급도 국가大事에 대해 정책을 수립해서, 대통령 이하 정부 최고 간부 앞에서 설명하고, 질문에 대해서 답변한다는 뜻이다. 실무에 밝은 朴正熙 대통령은 브리핑을 받는 자리에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때가 있는데, 이때 장차관이 답변을 못하는 경우가 나오기 때문에 생겨난 제도이다. 국장이든 과장이든 간에, 내용을 가장 잘 아는 실무공무원 즉, 테크노크라트가 우대받던 시대였던 것이다.
두 부처에 관계되는 사항에 대해, 두 부처간에 의견이 다를 때에는, 같은 장소에서 두 부처가 제각기 브리핑을 할 때도 있다. 이렇게 되면 브리핑을 담당하는 두 부처의 공무원간에, 격론이 벌어질 때가 있는데, 朴대통령은 모든 의견을 다 듣고 최종결단을 내렸다. 이럴 때는 어느 쪽도 불평할 수가 없었다. 양 부처 장관은 사전에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 책임이 있어, 대통령에게 송구하기 때문이다.
장관이 최종결정을 못한 채 브리핑할 때가 있다. 즉 결론에서 A안과 B안을 내놓고, 서로간의 장단점만 설명할 때이다. 이럴 때 朴대통령은 「장관! 당신은 A안을 택하겠다는 것이요, B안을 택하겠다는 것이요」 하고 호통을 친다. 장관은 책임행정을 하라는 뜻이다. 각 해당부처에서 작성하는 경제개발 계획은, 장관 이하 全공무원이 머리를 맞대고 합심해서 수립하는 것이지, 대통령의 눈치나 보고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질책이기도 하다.
각 부처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대통령 재가를 받기 위해 브리핑할 때에는, 마지막 페이지에 꼭 건의사항이 나온다. 보통은 「자금요구」 사항이 된다.
요약 정리하면, 정책사업은 ① 각 부처의 국장이나 과장급에서 성안을 하고 ② 장관의 결재를 얻은 후 ③ 관계장관이 배석한 자리에서 대통령에게 브리핑하게 된다. ④ 이 회의에서 검토를 거친 후 사업이 확정되는데 ⑤ 소요예산도 이때 확보된다. 이런 절차에 따라 결정된 사업을 「대통령 관심사업」 이라 칭했다.

③ 세부계획 작성에 들어가는 단계이다

세부 계획은 각 부처에서 수립하는데, 중요한 안건은 서류로 작성해서 대통령의 결재를 받기도 하지만, 장관 책임하에 확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결정된 계획은 장관 책임하에 집행하게 되는데, 성공하면 그 부처의 공이 되고, 실패하면 책임을 지게 된다. 전적으로 각 부처의 책임행정사항에 속한다.
원리와 원칙이 제대로 확정되었다면, 세부계획 단계에서의 작업은 수월해진다. 또한 자유재량의 폭이 적어져서, 非理의 발생 소지가 줄어든다. 세부계획 작성 단계에서는 공장 설립과 관계가 많다.
세부계획 작성 단계에서의 한 특별한 예를 든다. 국군 현대화 사업(율곡사업)의 사업추진 과정이다. 朴대통령은 이 사업의 추진과정에서, 무기의 선정은 무관(武官)에게 담당시키되, 이에 대한 검토는 문관(文官)에게 맡겼다. 미국의 군사원조가 무상원조(MAP)에서 유상원조(FMS)로 바뀌어지자 朴대통령은 외무부 직원 崔洸洙 국장(후에 청와대 수석 비서관, 외무부 장관 역임)을 국방부 군수차관보로 임명했다. 현역군인이 아닌 문관(文官)출신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朴대통령의 의도는 명확했다. 율곡사업과 같은 국가 기밀사업일지라도, 일반예산과 똑같이 ① 경제기획원의 예산당국에서 검토를 해야 하고 ② 국회의 심의과정 같은 절차를 받아야 하고 ③ 청와대 비서실에서 검토 후 대통령 재가를 받아서 집행해야 하고 ④ 감사원과 같은 기구에서 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기본원칙을 고수하겠다는 朴대통령의 강한 의지의 표출이었다.

④ 사업추진 과정이다.

朴대통령은 큰 사업에 착수 할 때에는, 꼭 기공식에 참석해서 축사를 통해 격려를 했다. 공사 중에도 현지 방문을 자주 함으로써 작업진도를 확인했는데, 주로 공장장이나 현장책임자로부터 기술적인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준공식에도 꼭 참석해서 노고를 치하하고 훈장을 수여했는데, 주로 기술자의 몫이었다.
朴대통령은 행사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갈 때에는 차량을 이용할 때가 많았다. 지방에 산재해 있는 수출품 제조 공장이나, 새마을 농촌 등 관심사업 몇 군데를 둘러보기 위해서이다. 때로는 통고 없이 갈 때도 있으니, 아무런 사전준비도 못한 상황이 되거나, 사장이 부재중일 때도 있었다. 당시에는 어떤 작은 공장이나, 시골의 새마을 농촌에서도, 브리핑 차트는 준비되어 있었고, 웬만한 간부는 브리핑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당시의 유행이었다.
朴대통령은 현장을 둘러보면서, 현장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설명을 듣는다. 그리고 떠나기에 앞서 “애로사항은 없느냐”고 물어본다. 새마을 농촌에서는 “숙원사업은 없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이러한 ‘애로사항’이나 ‘숙원사업’에 대해서는 그 자리에서 비서실장에게 지시해서 문제를 해결토록 했다. 이런 일들은 큰 뉴스거리가 되기 때문에 「일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국민에게 심어주게 된다.
한반도의 남단 여천에는 중화학공업건설(6개업종)의 하나인 화학공업 콤플렉스가 위치해 있다. 朴대통령은 이 공업지구를 건설함으로써, 북한의 공업을 완전히 압도하려고 했다.
朴대통령은 여천을 수 차례 방문했다. 부두가 완성되자, 朴대통령은 이곳을 시찰했다. 그리고는 항만 관리소를 찾아가서, “여기는 외국선박이 자주 드나드니, 외국선원들도 많이 찾아올 것이다. 부두가 더러우면 한국에 대해 나쁜 인상을 주게 될 것이다. 미화(美化)작업도 하고, 늘 깨끗이 하시오.”라고 했다. 그 후 朴대통령은 또 한번 찾아갔다. 아마도 미화작업 확인차 들렀을 것이다. 부두는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전국의 각 공단에서는, 미화작업에 힘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화작업 우수업체 콘테스트」를 열고 표창도 했다.
필자는 대통령 서거 후 10여 년 만에, 여천에 갈 기회가 있었다. 이때 옛날 생각이 나서 부둣가를 거닐었는데, 거기에는 온갖 쓰레기가 산더미 같았다. 경비원이 있기에 연유를 물어보았다. 그는“높은 사람이라곤 10여년간 한 사람도 찾아온 적이 없어요. 그러니 누가 관심이나 갖겠소.”라고 했다.
Posted by 강남포럼 mo51